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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190820 실수와 부담감의 상관관계

by 문수😁 2019. 8. 21.

 입추도, 말복도 지나고, 기온은 30도 초반까지 내려왔다. 30도 초반에서 바람을 느끼고 선선하다고 말하는 내가 너무 두렵다. 이렇게 K-써머에 적응하게 되다니, 짜증난다...

 

 오늘의 날씨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오늘의 피아노는 아니었다. 5시까지 도착해도 1시간 30분밖에 못 치는데, 오늘은 무려 5시 20분에 도착한 것이다. 정말 피치못할 사정이었고,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아주 단단히 화가 났다. 게다가 학원에 도착했더니 5개의 방과 개방된 피아노 1개 모두 자리가 차있어서, 한 10분 정도를 앉아서 바람 맞고 쉬었다. 쉬는 동안 선생님께 나의 억울함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더니 깔깔 웃으셨다. 쌤 제가 웃기세요?! 감사합니다.

 시간이 1시간밖에 없으니, 모든 교재를 다 연습하겠다는 건 욕심이었다. 오늘 필요한 건 바로 선택과 집중 아니겠는가. 그래서 저번 수업 때 치지 않았던 하농과, 일주일 전부터 고대하던 베토벤의(자꾸만 언급하게 됨ㅎㅎ) 소나티나를 연습하기로 했다.

 

 딱 일주일 전에 하농이 좋은 깨달음을 주었다고 적었다. 오늘의 하농은 정반대였다. '아, 이거 비르투오소 용 교재였지~ 내가 깜 빡 했 네~~~'를 내내 떠올리면서 연습했다. 오늘은 9번 곡을 연습했는데, 자꾸만 미스터치가 났다. 4-5번 손가락이 제대로 벌려지지 않는 것이다. '레'를 쳐야하는데 '미'를 치고, '미'를 쳐야하는데 '파'를 치고, ... 이런 실수들이 계속 반복됐다. 부점연습도, 스타카토 연습도, 4분의 3박자로 변주도 해보면서 연습하다가 다시 레가토로 돌아왔지만 마찬가지였다.

문제의 하농 9번이다(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accharin_&logNo=220637929825&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이런 문제들을 전부 고치고 교재를 덮고 싶었지만, 연습할 시간이 40분 정도 남은 상황에서 그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리고 5개월 간의 피아노 학습을 통해 깨달았다. 지금 당장은 1시간을 내리 연습해도 안 풀리는 부분이 일주일 뒤에 갑자기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이 점을 되뇌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하농은 이만 접기로 했다.

 

 다음으로 연습할 교재는 소나티나였다. 베토벤의 "Sonatina in G". 이 곡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 이유는 "그" 베토벤이니까 ㅋㅋㅋ 사람이 아주 얌체같다... 이러다가 모차르트 소나티네 치게 되는 날에는 아예 포스팅 한 개를 따로 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기대했냐면, 원래 치게될 곡을 미리 듣고 오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곡만큼은 집에서 마르고 닳도록 반복재생했다. 엄마랑 아빠한테도 들려주며, 당신들 딸이 이제 이 정도로 친다고 자랑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핫핫. 저번 수업에서 초견으로 한 번 연주했을 때도 꽤 잘 연주한 것 같아서, 기대는 더욱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곡은 잘 연주했다. "연주"라는 단어가 부끄럽지 않았다... 사실 조금 부끄럽지만. 아무튼 "음악스럽게" 쳤다고 할 수는 있다. 집에서 여러번 듣고 온 게 효과를 발휘한 걸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피곤해서 중간중간 졸면서 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음줄과 셈여림, 곡의 흐름을 최대한 잘 살리면서 연주했다. 물론 셈여림을 정확히 표현하기엔 한참 모자라서, 그 부분은 좀 아쉬웠다. 앞으로의 연습을 통해 해결해야 할 점이겠쥬. 그리고 오른손의 이음줄을 살리다보니, 왼손의 레가토를 나도 모르게 스타카토처럼 치고 있었다 ㅋㅋ 이 부분은 선생님이 지적하고서야 알아챘는데, 고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의 고질적인 문제가 터졌다. 선생님 앞에서만 치면 긴장해서 연습한 것 마냥 연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피아노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선생님 앞에서 멋지게 결과물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과했던 건지, 연습 때는 하지도 않았던 실수가 자꾸 튀어나왔다. 선생님께서는 처음 연주할 때 제일 부담없이 깔끔하게 잘한 것 같다고 말하셨는데, 나 역시 느끼고 있던 부분이라 속상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녹음본의 실수로도 이어졌다. 워낙 치게 될 거라고 자랑에 자랑을 거듭했던 곡인만큼, 깔끔한 연주를 녹음해서 엄마와 아빠한테 들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부담감을 과소평가했다. 녹음 버튼을 누르고 정확히 7초만에 실수가 나왔다. 연습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선생님 앞에서도 실수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연습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많이 실수했다. "여기서도???"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름 잘 해석하고 잘 연주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녹음 버튼이 뭐라고...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첫 술에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만큼 뭔가 부풀어있었던 것 같다. 돌아가는 내게 선생님은 칭찬 이후로 갑자기 긴장한 것 같다며 웃으셨다. 제가 잘 쳐도 칭찬은 집에 갈 때 몰아서 해주세요... 칭찬 들으면 복어처럼 부풀 테니까^^... 그러면서 선생님은 암보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악보를 머리로 외워야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무조건 실패하게 되니, 손이 자연스럽게 건반을 따라가게 해야한다고. 그러려면 연습을 반복하면서 손이 외우도록 하는 수밖에 없단다. 내가 악보를 외우려다가 긴장하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아무튼 귀신같은 선생님이다. 내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이시겠지?! 무서워 무서워.

 

+) 이번 베토벤 소나티나는 왠지 모차르트 곡스럽다고 느꼈다. 그 느낌이... 느낌이 그렇지 않나? 동시에 처음 연주했던 게 제일 낫다는 말을 듣자, 예전에 "모차르트는 칠수록 어렵다"는 말을 본 게 생각났다. 누가 했던 말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오늘같은 느낌인가보다... 라고 피(아노 어)린이가 한 번 나불대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