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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190813 하농이 주는 깨달음

by 문수😁 2019. 8. 14.

 우리집에는 피아노가 없고, 가까운 곳에 피아노 연습을 할 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어서 일주일에 두 번 피아노 학원을 가는 게 내가 하는 연습의 전부다. 그런데 저번주 수요일 이후 일주일만에 피아노 학원에 간다. 그 사이에 손이 굳었을까봐 걱정됐다. 특히 이번주부터는 동아리 때문에 피아노 칠 시간이 대폭 줄어들어서, 한 번 갈 때마다 한시간 반 정도밖에는 못 친다. 게다가 저번 레슨 때 새로 들어간 곡이 너무 많아서, 연주가 너무 서툴까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생각해보면 피아노 친 지 5개월밖에 안 됐으면서 뭐 서툴까봐 걱정인가... 당연한 건데. 하지만 귀만 허세st인 초보자 마음은 항상 그렇다.

 

 걱정을 가득 안고 학원에 도착하자,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늦게 도착했냐고 타박을 주셨다. 6시 반까지 운영하는데 5시에 갔기 때문이다... 8월달까지는 계속 그래야하는데 정말 말그대로 "힝입니다"였다.

 오랜만에 연주하는 피아노는 예상과 같았다. 건반이 이렇게 눌리면 안 되는데!

1. 체르니30의 1번 곡은 이제 제법 사람같이 연주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가서 치니 엉망 그 자체였다. 새로 들어간 3번 곡은 말이 필요할까? 매일매일이 초견 같다.^^  더듬더듬 모스부호 읽는 모습이 따로 없었다(어제 "기생충" 관련 글을 읽고 자는 게 아니었는데).

2. 부르크뮐러의 2번 "아라베스크"는 분명 외웠었는데, 다시 치니까 악보를 눈에서 뗄 수가 없었다. 3번 "파스토랄"은 섬세한 피아노(여리게)가 중요한데, 내 터치는 너무나도 투박했다. 4번 곡은 연속 스타카토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진도를 나갔던 5번 곡은, 얘길 해서 무얼 한다...

3. 소나티나 교재에서 제일 좋아하던 "Sonatina in D(by Tatiana Saliutrinskaya)"는 연주하기 쉽다는 과거의 발언이 무색하게 오만군데에서 미스터치가 났다. 진도를 나가는 곡도 이게 음악인지, 뚱땅거림인지, 구분이 안 갔다.

4. 반주법은 치지도 않았다. 오늘만큼은 피아노 뚝딱이 확정이었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던 와중에, 의외의 교재가 위로를 줬다. 싫다고~ 지루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던 바로 그 하농이 말이다. 하농을 칠 때는 레가토뿐만 아니라, 부점 연습, 셋잇단음표, 8분음표&16분음표, 테누토&스타카토 등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곡을 연습한다. 곡이 워낙 단순해서 가능한 일이다. 평소에는 하농 교재에 흥미를 별로 못 느끼기도 하고, 요즘 연습하는 7번 곡이 손가락 번호가 어려운 곡이라 그런 변주법들에도 손이 잘 안 갔다. 그런데 오늘은 그 변주법들이 손에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거다.

 뭐지?? 일단 좋아하자! 손가락 번호 때문에 몇 주 간(하농에서 몇 주는 정말 긴 시간이다) 애를 먹었던 7번 곡인데, 심지어 저번주 수요일에 거의 치지도 않았는데, 오늘 너무 쉬운 거다. 아싸. 파죽지세로 8번 곡까지 해치우고, 9번 곡으로 후딱 넘어갔다. 오랜만에 하농에 애정을 느꼈다. 이랬는데 내일 레슨받으러 가면 또 엉망이겠지? 이젠 한 번 잘했다고 기대 않. 헤.

 

 정말 알다가도 모를 피아노다. 피아노 학습은 공부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는 걸 느낀다. 오늘 하루종일 아무리 연습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은데, 꾸준히 연습하다가 한 열흘 뒤에 보면 뭔가 나아져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열흘을 쉬어도 나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이걸 평소에 그렇게도 홀대하던 하농을 통해 깨닫다니, 요상한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내일 가면 또 어떤 점이 달라질 지 궁금하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매일매일 이 궁금함을 안고 지낸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 변화 요소 하나하나가 즐겁고 설렌다. 내일 의외로 막히던 체르니30이 잘 풀릴 수도 있고, 갑자기 부르크뮐러와 소나티나를 연주하면서 음악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혹은 하농부터 반주법까지 싹 다 엉망진창일 수도 있다. 이런 소소한 기대(?)가 모이고 모여서 피아노 학습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