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농은 언제 들어간 교재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하농을 하겠다고 자처한 건 맞는데, 요즘엔 귀찮아서 잘 안 친다...ㅎㅎ... 7번 곡에서 계속 머물러있다. 하농을 치면서 4번, 5번 손가락의 힘이 부족함을 실감한다. 엄지손가락의 힘을 줄이는 것도 힘들고, 악센트를 자연스럽게 살리는 것도 어렵다. 원래 하농은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를 위한 테크닉 교재라고 들었다. 근데 문제는 이걸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비르투오소 용을? 내가?? 왜? 갑자기 의욕이 팍 떨어졌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와, 하농이라는 교재의 고질적인 지루함 등등이 겹쳐서 요즘 좀 불성실하게 연습하는 중이다. 하지만 하농을 연습하면서 손모양이 잡힌 건 확실함. 지루해서 문제지 좋은 교재다...
체르니30과 부르크뮐러 연습곡, 소나티나는 체르니100을 끝내고 거의 동시에 들어간 교재들이다.
체르니30엔 별로 좋은 추억이 없다. 중도포기의 아픈 기억만 남은 책이다. 하지만 과거의 실패를 현재의 성취로 바꿔주고 싶었삼. 그래서 하농에 이은 노잼 끝판왕 체르니30을 다시 잡게 됐다.
체르니100에서 체르니30으로 넘어가는 건 마치 중학교 수학에서 고등학교 수학으로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특히 그랬다. 체르니100의 아기자기하고 짧디짧은 연습곡을 치다가, 체르니30의 오선지로 꽉꽉 채워진 연습곡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왜 체르니30에서 그만뒀는지 새삼 실감했다... 하지만 지금 이 단계를 넘어서야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을 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성인'이니까^^ 참을성 있게 연습곡을 쳐보아야쥐 하는 거만한 태도로 체르니30의 첫번째 연습곡을 치기 시작했다.
거만한 태도는 1번 곡을 초견하자마자 사라졌다. 셋잇단음표의 향연도 향연이지만, 손이 안 떨어지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도미솔미 손가락 붙이고 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새끼손가락을 파에 붙이고, 엄지를 그 아래 솔, 검지를, ... 손가락이 민첩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박자도 흐트러졌다. 간신히 음에 익숙해지자, 선생님이 속도를 올려보라고 주문하셨다. 박자는 한층 더 난리가 났다. 그와중에 피아니스트 유자 왕이 어렸을 때 이 곡을 치는 동영상을 발견했다.
봐, 너무 잘 치지! 체르니는 이렇게 쓰는 거였다. 현타가 왔다. 이 얘기를 친구한테 하니 "그 분은 너보다 몇 배를 연습했을 거야..."하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너무 날로 먹으려고 했나봄. 1번 곡을 이 정도까지 치려면 몇 번을 연습해야할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깔끔하게 연주할 수 있을까? 아무튼 유자 언니의 연주는 좋은 교본이 되었고, 나는 이 연주를 목표로 1번 곡을 끝없이 연습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체르니30을 이렇게 완성시키려면 한참이 걸릴 거라며, 나를 진정시키고 2번 곡으로 넘어갔다.
2번 곡은 두 배로 힘들었다. 1번 곡은 셈여림이 극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2번 곡은 한층 셈여림이 다이나믹했다.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피아노와 포르테, 포르티시모, 악센트가 끝없이 나오는 와중에 솔에서 도, 도에서 파, 다시 도에서 레, 레에서 솔... 좌절했다. 하지만 체르니30은 요령이 없는 교재다. 그냥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주일을 연습해도 실력이 정체된 것 같으면서, 일주일을 안 쳤는데도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느낌이 드는 게 바로 피아노고, 체르니30이었다.
한 곡을 봐줄 만하게 연주하게 되면 다음 곡 진도를 나가서 다시 피아노 걸음마를 내딛게 된다. 피아노 학습의 역설적인 면이다. 더듬더듬 초견은 해도해도 끝이 없다. 2번 곡을 꽤 '음악처럼' 연주하자, 선생님은 감탄하시면서 한 치 쉴틈도 없이 바로 3번 곡으로 넘어가셨다. 지금 치고 있는데 그냥 죽겠다...
체르니30을 치면서 골머리를 앓을 때 도움이 되는 교재가 바로 부르크뮐러의 25개 연습곡이다. 이 교재는 부르크뮐러가 아동 학습자들을 염두에 두고 만든 만큼, 연습곡의 길이가 짧고 선율이 아름답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치면서 가장 좋아했던 교재이기도 하다. 기대하고 받은 부르크뮐러는 제 역할을 했다. 체르니30으로 황폐해진 내 두뇌를 감성으로 촉촉히 적셔준 것이다... 2번 "아라베스크"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 쳤다. 외웠다. ^^. 3번 곡인 "파스토랄"은 치면서 너무 맘에 들었다.
문제는 4번 곡이었다. 끝없는 오른손 화음 스타카토! 깔끔하게 칠래야 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스타카토는 시냇물처럼 맑게 울리는 스타카토인데, 내가 치는 스타카토는... 투박하기 그지없다. 한 손가락 스타카토도 썩 좋지 않은데 두 손가락 스타카토? 말도 안 돼. 너무 어려워. 하지만 꾸역꾸역 치고 넘어가서 지금은 5번 곡을 치고 있다.
저번 글과 저저번 글에서 소나티네를 못 쳐서 한 맺혔다는 말을 계속 했었다. 때문에 나의 첫 목표는 "소나티네 치기"였다. 하지만 체르니30의 초반부를 간신히 쳐내는 지금 소나티네는 좀 과한 교재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게 주신 교재가 바로 소나티'나'이다. 소나티나는 소나티네보다 훨씬 더 짧고 쉬운, 말 그래도 작은 곡들이다. 하지만 소나티네에서 주로 쓰이는 선율들이 소나티나에도 존재하며, 우리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많다. 소나티나 교재는 체르니30보다 훨씬 즐거우면서, 부르크뮐러25보다 살짝 더 어렵다. 그 특징이 연습을 지속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동력이 되는 건, 소나티나 교재를 끝내면 그렇게 고대하던 소나티네를 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연주한 소나티나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건 타티아나 살리우트린츠카야Tatiana Saliutrinskaya(??)의 "Sonatina in D"이다. 들을 때보다 연주할 때 더 즐거운 곡이다. 도입부 선율의 포르테와 바로 이어지는 피아노, 경쾌한 곡조, 양손이 같이 움직이는 점 모두 좋았다. 무엇보다... 쉽다...ㅎㅎ
이렇게 3월 중순부터 지금까지의 피아노 학습을 정리해봤다.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돌아보니 꽤 열심히 공을 들여 연습했던 것 같다. 올해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다. 다음부터는 짧게 연습일지를 쓸 거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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