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5개월 간의 피아노 진도 정리 上

문수😁 2019. 8. 12. 01:27

 피아노 학원에 간 첫날에 선생님께 말씀드린 게 있었다.

 1. 난 음감 하나도 없다. 박자감도 걍 그렇다. 노래도 완전 못 부른다.

 2. 부르크뮐러 연습곡 다 쳐봤다. 24번(제비)을 좋아했다.

 3. 그런데도 소나티네는 거의 손도 못 대봤다. 그게 한이다.

 4. 기타가 집에 있는데 코드가 뭔지 도통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쳐봤자 재미가 없다. 코드 배우고 싶다.

 그래서 나의 피아노 진도는 상기한 네 가지의 배경 설명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근데 6개월 간 배워보고 얘기하는 건데, 내 음감은 의외로 쓸만하고 귀도 그럭저럭 괜찮다. 오히려 박자감이 진짜 똥망이다).

 

 처음 가서 받은 교재는 바이엘 2권이었다. 1권 받을 줄 알았는데. 바이엘 2권을 받은 것보다 놀라운 건 피아노 진도 카드를 안 준다는 거였다...

이거 있잖아... 한 번 치고 다섯 개 칠하는 그거. 피아노 안 치고 색칠공부 용도로 쓴 그거.

 이걸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안 주셨는데, 아니... 조금 억울하네... 물론 한 곡마다 다섯 번보다 훨씬 많이 쳐서 진도카드가 아무 의미 없긴 한데, 왜 안 주셨지 진짜?? 다음 레슨 때 여쭤봐야겠음. 이번에야말로 성인의 성실함을 보여주리라, 진도카드를 정직하게 꽉꽉 채우리라 다짐한 나는 기운이 좀 빠졌다.

 

 아무튼 바이엘 2권부터 4권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어렸을 때 피아노 친 보람을 10년 후에야 느끼다니. 바이엘을 치면서 중간중간 배운 게 코드였다. C, Cm, C aug, Cm aug, C dim, Cm dim, C7, CM7, ... 나 이거 다 안다? 핫핫핫. 으뜸, 버금딸림, 딸림 다 안다고 이제ㅋㅋ(뻥이다. 대충 알아서 아직도 4도, 5도 이런 말 나오면 두뇌 꼬인다). 코드를 읽게 되자 악보 보는 재미가 한 수 늘었다. 옛날엔 그렇게 어려웠던 동요집 왼손반주도 코드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았음. 물론 그렇다고 연주가 쉬운 건 아니었기 때문에 동요집은 1권, 2권 모두 착실하게 끝냈다.

 

 문제는 그때 즈음부터 들어간 반주법 교재였다. 이게... 이게 진짜 대박이라고... 반주법 교재는 산 넘어 산이었다. 아까 내가 코드 다 안다고 했지? 그거 반은 찐이고 반은 구라다. 장3도 어쩌구하는 이론을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는데, 그것보다 문제인 건 바로 자리바꿈이었다. 이게... 이게 진짜 웬수라고... 너무너무 익숙한 C코드도 자리바꿈과 함께라면? 전에 알던 내가 아냐 브랜-뉴-사운... C코드 G코드 F코드가 낯설게 느껴졌다.

 자리바꿈이 익숙해질만 하니 선생님이 페달을 밟아보라고 하셨다. 페달 깔끔하게 밟기? 내가 이거 할 줄 알면 조성진 된다. 이건 뻥 아니다. 그만큼 어려웠다. 몇 십 번을 치는 나를 보다못한 선생님께서 대충 있어보이게 페달 넣는 법을 알려주셨다. 다음 마디의 첫음에 페달을 떼고 바로 밟으면 신기하게도 부드럽게 음이 연결되었다.

 페달이 익숙해지자, 영원히 낯설 것만 같은 반주법의 세계를 맞이했다.^^ 치면서 욕 제일 많이 한 듯^^ 왼손 소리 크기를 줄이고, 8도 4도 3도 어쩌구 도약을 호다닥 하고, 셋잇단음표와 팔분음표 두 개를 맞추고(이거 아직도 못 함), 반주법 스킬은 배워도배워도 끝이 없는 게 아닐까? 이거 배울 때 치던 게 피아노 소곡집, 하농, 간추린 체르니100이었는데 반주법이 넘사벽으로 어려웠다. 지금 배우는 도약은 체르니30 정도 수준이라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선생님이 일부러 늦게 알려주신 듯... 발 못 빼게... 하지만 지금은 좀 익숙해져서 도약은 할 만 하다. 요즘 문제는 B코드와 그의 자매들+또다시 자리바꿈인데... 이건 앞으로 쓸 기회가 많을 듯.

 

 체르니100은 쓸 말이 별로 없다. 걍 후루룩 나간 것 같음. 내가 쓴 교재는 간추린 체르니100이라 중요한(혹은 그렇다고 판단되는) 30곡을 모아둔 건데, 아마 나처럼 끈기없는 학습자를 위한 거겠지? 잘 써먹었다. 30곡 중 추가연습이 필요한 대여섯곡은 체르니100을 하는 내내 연습했다.

 

  피아노 소곡집. 요것이 할 말이 좀 많다. 피아노 소곡집은 말 그대로 소곡 모음집인데, 유명한 곡들을 악보 한두페이지 정도로 간추려서 나같은 학습자들이 치라고 만들어놨다. 체르니, 하농과 같은 노잼 연습곡 치면서 빡칠 때마다 멜로디 있는 거 치면서 마음 다스리라고 만든 책인 것 같다. 유명한 곡들은 조성 때문에라도 난이도가 높은데, 그래서인지 피아노 소곡집에는 조성을 바꿔놓은 곡들이 많았다.

 처음 소곡집을 받고 내가 고른 곡은 "사랑의 로망스"였다. 스페인 민요 그거 맞음. 셋잇단음표를 죽어라 연습했다... 지금도 자연스럽게는 못 친다. 그래도 악보 두 페이지짜리 멜로디를 직접 쳐낸다는 점에서 넘나 뿌듯한 것. 들어줄 정도로는 만들었다.

 그 다음 선생님이 골라주신 곡은 "캐논"이었다. 왼손 진행이 매우 간단하고 오른손 또한 어려운 화음이 없으며, 스케일을 처음 연습하기에 좋은 곡이라서 골라주신 듯 했다. 무엇보다도, 피아노 치는데 한 곡 쯤 외워보는 게 좋지 않겠냐며 캐논을 외우라고 던져주셨다. 문제는 내가 캐논이라는 곡에 관심이 별로 없었으며(귀가 허세 부리는 st), 암보도 드럽게 못한다는 데 있었다. 결국 그럭저럭 연주하게는 됐지만, "노잼이에요 엉엉" 타령에 질리신 선생님이 캐논 암보를 포기하셨다. 근데 캐논 왼손 간단하다는 말은 취소할게... 복잡한 버전 보니까 손도 못 대겠더라고.

 세 번째 곡은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이었다. 뭐래? 근데 진짜임. 비창 2악장을 정말정말 쉽게 편곡한 버전이었다. 원곡은 다단조인데, 내가 연주한 버전은... 아 사실 기억 안나는데, 가단조였던 듯. 특유의 오른손 화음이 다 빠진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비창 2악장의 멜로디가 넘사벽으로 아름다운 덕분에, 그렇게 중요한 요소를 쏙쏙 빼서 편곡해먹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근데 내가 겁나 못 쳤다. 페달링도 부자연스럽고, 이 곡의 서정적인 면도 왼손 쾅쾅 치느라 못 살리고, 와중에 미스터치는 끝없이 나고... 그래도 이 곡을 연습하면서 왼손 소리 크기를 많이 줄였다. 하지만 내가 어지간히 못 쳤는지, 아니면 내가 피아노 소곡집이라는 교재로 얻을 게 별로 없어보였는지, 이 곡을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피아노 소곡집은 이제 그만 치자고 cut하셨다... 그렇게 피아노 소곡집은 내가 마무리짓지 못한 첫 교재가 되었다.

 

(下에서 계속...)